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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열풍이 일고 있다. 바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평일 오전 10시도 되지 않은 시간부터 박물관 앞에 긴 줄이 늘어서는 이른바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25년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한 270만 명을 기록하며 용산 이전 개관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7월 한 달간 굿즈샵 매출이 49억 5200만 원으로 작년 동월 대비 2.8배 수준으로 급증했다는 점이다. 한국 전통 의상과 문양이 K팝과 만나 만들어낸 문화적 시너지가 국내외 관광객들을 박물관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일회성 현상을 넘어 K전통문화의 새로운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조용했던 박물관이 어떻게 젊은 세대들의 핫플레이스로 변모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열풍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깊이 있게 살펴보자.
케데헌이 불러온 박물관 문화의 패러다임 변화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평일 아침부터 줄을 서는 광경은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용한 문화공간이던 박물관이 젊은 세대들의 필수 방문지로 변모한 배경에는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성공이 있다.
1. 전례 없는 글로벌 흥행과 문화적 파급력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41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공개 2주 만에 전 세계 90개국 이상에서 TOP 10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작품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복, 호작도, 민화 등 한국 전통 요소들이 현대적인 K팝 세계관과 절묘하게 결합된 시각적 스펙터클은 해외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2. 20년 만의 최고 관람객 기록 달성
이러한 글로벌 관심은 즉각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증가로 이어졌다. 2025년 상반기 관람객 수가 270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4% 급증하며, 서울 용산 이전 개관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관람객 구성의 변화다. 기존에는 중장년층이 주를 이뤘던 박물관 관람객층에 20-30대 젊은 세대가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작품 속 등장했던 전통문화 요소들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하기 위해 박물관을 찾고 있다.
3. 오픈런 문화의 박물관 상륙
더욱 흥미로운 현상은 기존에 패션 브랜드나 아이돌 굿즈 매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오픈런' 문화가 박물관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평일 오전 9시 30분 개관 시간에 맞춰 일찍부터 줄을 서는 관람객들이 급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시 관람보다는 뮷즈샵에서 케데헌 관련 굿즈를 구매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과거 조용한 명상과 사색의 공간이던 박물관이 활기찬 문화 소비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
뮤즈샵 매출 폭증과 K전통문화 상품의 세계화
케데헌 열풍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샵이다. 7월 한 달간 매출이 49억 5200만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월 17억 6600만 원 대비 2.8배나 급증했다. 이는 단순한 수치 증가를 넘어 한국 전통문화 상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1. 호랑이 굿즈의 폭발적 인기
작품 속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 '더피'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호랑이 관련 배지와 굿즈가 일시 품절 사태를 빚었다. '호랑이 까치 안전 키링'과 같은 전통 모티브를 활용한 상품들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전통문화가 현대적 감각과 만났을 때 얼마나 강력한 소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 해외 선물용 수요의 급증
더욱 주목할 만한 변화는 해외 선물용 구매 수요의 급증이다. 일본에 거주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40대 이모씨는 "요즘 일본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 굿즈가 인기가 많다"며 선물용으로 여러 개를 구매했다고 전했다. 미국 거주 딸을 위해 굿즈를 구매하러 온 60대 조 모 씨의 사례도 이러한 트렌드를 방증한다. 한국 전통문화 상품이 단순히 국내 관광 기념품을 넘어 글로벌 문화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3. 정기 방문객의 등장
특히 흥미로운 현상은 박물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단골' 고객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신사임당 관련 굿즈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 꼴로 놀러 온다"며 "요즘엔 카페보다 여기 와서 어떤 굿즈가 새로 나왔는지 구경하고 수다 떠는 게 더 재밌다"라고 말했다. 박물관이 단순한 문화 교육 공간을 넘어 사교와 소비가 결합된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 소비 트렌드의 변화와 향후 전망
케데헌 열풍으로 촉발된 국립중앙박물관의 변화는 단순한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 문화 소비 패턴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한다. 이는 전통문화와 현대 콘텐츠의 결합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과제들도 제기하고 있다.
1. 조용한 감상 환경의 변화
박물관의 대중화는 분명 긍정적 현상이지만, 기존 관람객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명상 공간으로 기획된 '사유의 방'조차 북적이는 분위기가 되면서 본래 기획 의도대로 감상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대 관람객은 "사유의 방이 처음 만들어졌을 무렵부터 자주 찾아와 고요함을 즐기곤 했는데, 최근에는 관람객이 늘면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는 등 본질적인 기획의도대로 감상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2. K전통문화의 글로벌 확산 가능성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는 "최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글로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외국인 입장에서는 독특하고 새롭게 느껴질 한국 전통 요소와 우리나라의 소비자 지향적인 상품 특성이 만나 앞으로도 당분간 이 같은 인기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립민속박물관이 2025년 8월 1일부터 '한류문화사전'을 공개하며 케데헌에 등장한 다양한 한국문화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관심 증가를 반영한다.
3. 박물관 운영 방식의 혁신 필요성
급증한 관람객과 다변화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박물관 운영 방식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시 공간과 굿즈 매장의 분리 운영, 시간대별 예약제 도입, 조용한 감상을 원하는 관람객과 활발한 체험을 원하는 관람객을 위한 차별화된 공간 조성 등의 방안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케데헌과 같은 콘텐츠와의 공식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더욱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문화 상품 개발도 필요하다.
결국 K팝 데몬 헌터스 열풍으로 시작된 국립중앙박물관 오픈런 현상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과 글로벌 확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 문화와 상업, 국내와 해외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되며 더욱 발전된 형태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