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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국내 철강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연합이 철강 수입 무관세 쿼터를 기존 대비 절반으로 축소하고, 쿼터 초과분에 대해 기존 25퍼센트였던 관세를 50퍼센트로 두 배 인상하는 관세율할당제 도입안을 발표한 것이다.
올해 6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 관세를 25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인상한 데 이어, 또 다른 핵심 수출시장인 유럽연합마저 수입장벽을 대폭 강화하면서 한국 철강산업이 사면초가에 내몰렸다.
산업통상부 추산에 따르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철강 쿼터 총량이 1830만 톤으로 기존 대비 47퍼센트나 감소하게 된다. 작년 기준 한국의 유럽연합 철강 수출액은 44억 8000만 달러로 전체 철강 수출의 13.5퍼센트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며, 특히 자동차 강판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의 핵심 수출처라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가 크다.
이미 지난 8월 한국의 열간압연강판 쿼터가 100퍼센트 소진된 상황에서 쿼터 축소와 관세 인상이 겹치면 향후 수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글에서는 트럼프 이어 유럽연합도 관세를 강화하면서 철강 50퍼센트 관세를 물리게 된 배경과 국내 업계의 대응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철강 수출시장이 한순간에 무너지다
2025년 10월 7일 현지시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신규 철강 관세율할당제 도입안은 국내 철강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번처럼 양대 핵심 수출시장이 동시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스테판 세주르네 유럽연합 번영 및 산업전략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자신의 엑스 계정을 통해 "유럽의 제철소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관세 쿼터를 절반으로 줄이고 초과분에 50퍼센트 관세를 부과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수입 규제 강화를 넘어 보호무역주의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 2025년 철강산업을 강타한 관세 쓰나미
올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부과하던 25퍼센트 관세를 50퍼센트로 인상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당시 업계는 미국 한 곳만이라도 뚫려있으면 버틸 수 있다고 낙관했지만, 불과 4개월 만에 유럽연합마저 같은 수준의 관세장벽을 세우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유럽연합 철강 수출액은 44억 8000만 달러로 미국 43억 5000만 달러와 함께 1, 2위를 다투는 핵심 시장이다. 전체 철강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5퍼센트에 달하며,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자동차 강판, 고급 가전용 외판재 등이 주력 수출 품목이다.
두 시장 모두에 50퍼센트 관세가 부과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말 그대로 수출 전선이 붕괴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2. 쿼터 소진으로 더욱 절박해진 상황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국의 시장 가격 조사 업체 아거스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열간압연강판 및 강대 부문의 한국 쿼터 16만 3078톤이 이미 100퍼센트 찼다. 냉간압연강판 쿼터 9만 5726톤의 65퍼센트, 후판 쿼터 11만 1358톤의 83퍼센트가 소진된 상태였다. 이는 연말까지 아직 2개월이나 남았는데도 대부분의 무관세 혜택을 이미 다 써버렸다는 의미다.
2025년 들어 글로벌 철강 수요가 감소하면서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자 쿼터 경쟁이 치열해졌고, 결국 조기 소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다.
유럽연합 철강 관세 50퍼센트 인상의 실체
유럽연합이 이번에 발표한 관세율할당제 도입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철강 수입 무관세 쿼터 총량을 최대 1830만 톤으로 제한한다. 이는 기존 세이프가드 조치 대비 47퍼센트 감소한 수치다.
둘째, 국가별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해 기존 25퍼센트였던 관세를 50퍼센트로 두 배 인상한다.
셋째, 모든 철강 수입품에 대해 조강국 기준을 도입해 생산국 증빙 의무를 강화한다.
이는 제3 국을 경유한 우회 수출을 원천 차단하려는 조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할당량 규모가 2013년, 즉 철강 과잉 생산이 시작된 시점부터의 수입량과 동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1. 트럼프 관세와 유럽연합 관세의 상관관계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연합이 철강 관세 문제에서 공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철강 관세를 50퍼센트로 인상할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은 무역합의 공동성명에서 저율관세할당제 해법 도입 가능성에 합의했다.
유럽연합은 이 규정을 근거로 트럼프 행정부에 유럽산 철강에 대해서는 관세를 인하해 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이 서로 관세를 낮춰주는 대신, 한국을 비롯한 제3 국 철강에 대해서는 높은 장벽을 쌓는 구조인 셈이다.
지난 7월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 철강 콘퍼런스에서는 유럽 철강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중국산 덤핑을 막으려면 모든 아시아산 철강을 규제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발언을 들었다. 당시는 반신반의했지만, 불과 3개월 만에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2. 국내 철강업계가 받을 구체적 타격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 사들은 이번 유럽연합의 조치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특히 유럽연합은 자동차 강판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의 핵심 수출시장인 만큼 향후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 쿼터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포스코 관계자 역시 "세부 운영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향후 개별 국가와의 협상도 거쳐야 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결코 쉬운 상황은 아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까지 수입 규제에 나서면서 철강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정확한 쿼터 감소량이나 품목별 영향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한 만큼 업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3. 탄소국경조정제도라는 또 다른 복병
설상가상으로 철강 업계는 내년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본격 시행도 앞두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며 생산된 제품을 유럽연합으로 수입할 때 유럽연합 내에서와 같은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이후 국내 철강 부문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2026년 851억 원 수준에서 점차 증가해 2034년부터 5500억 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했다. 관세율이 50퍼센트로 오르는 상황에서 탄소 비용까지 추가되면 한국산 철강의 가격 경쟁력은 사실상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위기 속 철강업계의 생존 전략과 정부의 역할
트럼프에 이어 유럽연합까지 철강에 50퍼센트 관세를 물리면서 한국 철강업계는 역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양대 핵심 수출시장이 동시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업계와 정부는 총력을 다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쿼터 확보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산업구조 개편과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한 시점이다.
1. 정부의 적극적 통상 협상 필요성
산업통상부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긴밀히 협의하며 한국산 철강에 대한 쿼터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자동차 강판, 가전용 외판재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유럽 완성차 업체와 가전업체들이 한국산을 선호하는 품목이기 때문에 협상력이 있다.
2019년 미-중 무역전쟁 당시 정부의 통상 협상 과정에서 당시 정부가 미국 자동차 업계를 설득해 한국산 자동차 강판에 대한 예외를 인정받았던 사례가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럽연합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한 점을 고려할 때, 한국도 기존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예외 적용을 요구할 여지가 있다.
2. 철강업계의 구조조정과 고부가가치화 전략
장기적으로는 철강업계 스스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범용 철강 제품으로는 중국이나 인도와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초고강도강, 전기강판, 수소환원제철 같은 미래 기술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포스코는 이미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현대제철도 초고강도 자동차 강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동 등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도 시급하다. 미국과 유럽 의존도를 낮추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다.
3.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철강산업의 미래
역설적으로 이번 위기가 한국 철강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안이하게 기존 시장에 안주하던 업계가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변화에 나선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스마트 팩토리 같은 메가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1960년대 포항제철소 건설 이후 60년 넘게 세계 철강산업을 이끌어왔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해 온 저력이 있다. 이번에도 정부와 업계가 긴밀히 협력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혁신에 투자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많지 않다. 유럽연합의 새로운 관세제도는 회원국 승인을 거쳐 빠르면 2026년 초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앞으로 1년이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결국 트럼프 이어 유럽연합도 관세를 강화하며 철강에 50퍼센트 관세를 물리는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이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