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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실노동시간 단축지원법' 추진으로 주 4.5일제 도입이 현실화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법제처가 발표한 123개 국정과제 입법계획에 따르면 연내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는 이 법안은 주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1%가 납기 준수의 어려움을, 24.1%가 인건비 부담 및 비용 상승을 우려하고 있어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미 뒤처진 상황에서 근무시간 단축은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로봇산업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자동화 수요 증가로 주가가 급등하고 있어 산업별 명암이 뚜렷하다. 이번 주 4.5일제 입법추진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목격한 근로시간 단축의 현실
경기도 안산의 한 중소 제조업체를 방문했을 때 목격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공장은 여전히 분주했고, 직원들은 다음 날 납품할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야근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 김 대표는 "원청업체에서 요구하는 납기를 맞추려면 현재도 빠듯한데, 근로시간을 더 줄인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깊은 걱정을 토로했다. 이는 주 4.5일제 입법 추진을 앞둔 중소기업 현장의 생생한 현실이다.
1. 한국의 급격한 근로시간 감소 추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노민선 실장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근로시간은 2014년 2,075시간에서 2024년 1,865시간으로 210시간이나 감소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근로시간 감소폭이 가장 큰 수치로, 미국 34시간, 일본 112시간, OECD 평균 52시간과 비교해도 월등히 크다. 특히 중소기업 상용근로자의 주 36시간 이하 근로 비중은 2014년 9.3%에서 2024년 26.9%로 17.6% 포인트 증가하여, 대기업 증가폭보다도 1.7% 포인트 컸다.
2.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 방향
정부는 2030년까지 한국의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법정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줄여 금요일 오후를 휴식과 재충전 시간으로 보장하는 주 4.5일제가 핵심 방안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아랍에미리트가 2022년부터 주 4일제를 시행하는 등 근로시간 단축이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3. 중소기업계의 절박한 현실
하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상황은 정책 목표와 큰 괴리가 있다. 제조 중소기업의 절반이 납품 기업인 점을 고려하면, 근무 시간을 줄일 경우 생산량과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한 제조 중소기업 대표는 "중국으로 인해 우리 기업 경쟁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상황에서 근무시간을 줄인다면 더 이상 중국과는 게임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산업별 파급효과와 경제 구조 변화의 심층 분석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중소기업 인력포럼'에서 나타난 조사 결과는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업계의 깊은 우려를 여실히 보여준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이 납기 준수의 어려움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으며, 인건비 부담 및 비용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24.1%에 달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적 우려를 넘어 기업 생존과 직결된 현실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1. 제조업계의 구조적 취약성 노출
납품 제조 중소기업에게 주 4.5일제는 특히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청업체의 발주에 대한 납기를 준수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추가 인건비 발생으로 자금 부담도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건설 중소기업 관계자는 "최근 수도권 건설 현장에서는 노조가 사다리차에 영상 장비를 달고 현장을 촬영하면서 지켜보는 일까지 등장했다"며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을 더욱 압박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2.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심화 우려
업계에서는 주 4.5일제가 대기업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입법이 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납기 등의 압박으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결국 대기업 근로자들과 삶과 소득 면에서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3. 로봇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자동화 가속화
반면 로봇산업은 주 4.5일제 도입 소식에 큰 호재를 맞고 있다. 로보스타 주식은 전날 대비 20.29% 급등했으며, 에브리봇, 에스피시스템스 등도 두 자릿수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에인절로보틱스, 휴림로봇, 하이젠알앤엠, 나우로보틱스, 두산로보틱스, 클로봇 등 로봇 관련주들이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산업 현장에 로봇 도입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속가능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현실적 방안
주 4.5일제나 주 4일제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중소기업 현장이 이를 시작할 체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일치된 견해다. 따라서 해당 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방식보다는 현실을 고려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주 4.5일제 도입 시 주휴수당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1. 노사 선택권 존중과 유연한 제도 운영
노민선 실장은 "노사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근로시간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벤처스타트업 등의 주요 종사자를 근로시간 규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과 중소기업의 성과보상 활성화를 위한 세제 확충 등이 핵심이다. 이러한 접근은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업종과 기업 규모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2.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해법 모색
로봇주의 강세는 노동시간 단축이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자동화와 디지털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근로시간 단축과 경쟁력 유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지원하여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3. 정책 실효성 제고를 위한 종합적 접근
주 4.5일제가 성공하려면 단순한 법 제정을 넘어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하락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 지원, 자금 지원, 세제 혜택 등을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 또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통해 납품업체의 부담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주 4.5일제 입법추진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