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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달러 환율이 1430원을 돌파하면서 금융시장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1300원대 초반에서 머물던 환율이 불과 1년 만에 100원 넘게 뛰어오른 것이다.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설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에는 환율이 급등하면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치고 경제위기설이 돌았지만, 이번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글로벌 무역전쟁의 불확실성과 미국 금리정책의 영향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수출기업의 실적 개선이라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 환율 상승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는 이유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환율 1430원 시대, 무엇이 달라졌는가
2025년 10월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2원 오른 1431.0원에 마감했다. 약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나은행 딜링룸의 전광판에는 빨간색 숫자들이 눈부시게 깜빡였고, 외환딜러들의 표정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이날 기획재정부는 서둘러 성명을 내며 "시장의 쏠림 가능성에 대해 경계감을 갖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4월 이후 약 6개월 만의 구두개입이었다.
1. 과거와는 다른 시장 반응
흥미로운 점은 이번 환율 급등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한국 금융시장에서 환율과 주가가 동시에 상승한 확률은 20퍼센트 남짓에 불과했다.
나머지 80퍼센트는 환율이 오르면 주가가 떨어지는 정반대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지난 10월 10일 환율이 1420원을 넘어섰을 때,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1조 612억 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코스피는 장 초반 3646.77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2. 뉴노멀로 자리 잡은 고환율
전문가들은 이제 고환율이 새로운 표준, 즉 뉴노멀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환율 급등이 경제위기의 신호탄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달러 강세라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나증권 김두언 연구원은 "원화 약세가 미치는 부정적 요인을 긍정적 요인이 상쇄하고 있다"며 "올해 원화 약세는 달러가치 변동이나 한국 경제 펀더멘털보다는 트럼프 정책 불확실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3. 환율 상승의 이면에 숨은 트럼프 변수
실제로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전면적인 보호무역 정책과 미중 무역전쟁의 재점화가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0월 중순 미국과 중국의 관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달러 수요가 급증했고,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졌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시사까지 더해지면서 달러 강세는 더욱 견고해졌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미 금리차 확대 우려도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우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엇갈린 희비
1. 수출 대기업의 반사이익
환율이 오르면 가장 먼저 혜택을 보는 곳은 수출 대기업들이다. 같은 제품을 팔아도 환율이 높으면 원화로 환산했을 때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12조 1000억 원의 깜짝 실적을 낸 데에는 환율 효과가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 역시 3분기 10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원화 10퍼센트 약세 시 수출기업 영업이익이 5에서 10퍼센트 개선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2. 중소기업의 이중고
반면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파는 중소기업들은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의 한 목재 가공업체 대표는 "총 생산원가에서 직접적으로 환율 영향을 받는 부분이 45퍼센트 정도인데, 작년 대비 환율이 크게 뛰면서 수익 감소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납품단가를 올려야 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까 봐 그것도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원가 인상 부담을 업체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 현장에서 체감하는 환율 충격
철강을 수입해 판매하는 부산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상반기 대비 수입 주문 단가가 5에서 10퍼센트 정도 올라간 것 같다. 정확히 추정하긴 어렵지만 영업이익이 10에서 15퍼센트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초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이 생각하는 적정 환율은 평균 1304.0원이었다. 수입만 하는 기업들은 1274.4원을 적정 수준으로 봤다. 현재 환율이 이보다 100원 이상 높은 상황이니 중소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4. 외국인 투자자의 전략적 접근
흥미롭게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상황을 오히려 투자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10월 14일에도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4885억 원을 순매수했다.
이들의 계산은 이렇다. 환율이 1430원일 때 한국 주식을 사고, 향후 통화스와프 체결 등으로 환율이 1300원대로 안정되면 주가 변동이 없어도 1달러당 130원어치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10월 29일부터 30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환율 변동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의 윤곽이 드러날 경우 환율 안정화 기대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
1. 구조적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
원달러 환율 1400원 시대는 이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미국의 금리정책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들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025년 하반기까지 환율이 1350원에서 1500원 사이에서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처럼 1200원대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고환율 시대에 적응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2. 기업별 맞춤 대응이 절실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환율 영향이 극명하게 다른 만큼 정책 당국의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수출 대기업들은 환율 상승의 수혜를 누리고 있지만,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운임비 등 물류지원 확대, 환변동 보험 지원, 금리 인하, 수출마케팅 지원 확대 등 실질적인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환율 상승분을 납품가에 반영할 수 있는 공정거래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3. 개인 투자자의 현명한 판단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환율 변동을 투자 전략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환율이 높을 때는 수출 대기업 주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반대로 환율이 안정되는 국면에서는 내수 관련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환율 예측은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영역인 만큼 무리한 레버리지 투자는 피해야 한다.
분산투자 원칙을 지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결국 펀더멘털로 돌아온다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정책 불확실성과 미중 무역전쟁이 환율을 좌우하겠지만, 결국에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환율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KB증권 오재영 연구원은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관세 협상 합의점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이라며 향후 환율 안정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다만 국내 경제의 구조적 문제, 특히 정치적 불안정성과 민간 소비 위축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환율이 1300원대 중반에서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는 이유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