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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총 16조 4천억 원 규모의 역대 최대 채무조정 정책을 발표했다. 캠코 산하 배드뱅크(BAD Bank) 설립을 통해 7년 이상 연체된 5천만 원 이하 무담보 채권을 일괄 매입하고, 상환능력이 없는 113만 4천 명의 빚을 전액 탕감하거나 최대 90%까지 감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은 소상공인들에게는 새 출발기금을 통해 기존 최대 80%에서 90%까지 원금 감면 혜택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 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다. 성실 상환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도덕적 해이 우려, 그리고 무엇보다 막대한 재정 부담과 금융 시스템에 미칠 파급효과가 쟁점이다. 과연 이 정책이 소상공인 경제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인가. 정책의 구체적 내용부터 실행 가능성, 그리고 예상되는 부작용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다.
코로나 상처, 소상공인 빚더미의 현실과 정치적 해법의 등장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줄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한 실질적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 방역 정책으로 영업 제한을 받으면서도 임대료와 인건비는 그대로 지출해야 했던 소상공인들은 생존을 위해 대출을 받았지만, 이제 그 빚이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됐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2019년 544조 원에서 2023년 929조 원으로 70%나 급증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소상공인들의 생존 위기를 의미한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코로나19 대출 종합대책을 바탕으로 채무조정부터 탕감까지 자영업자들이 진 빚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책이 단순한 인기영합주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 회복 정책이 되려면 세밀한 설계와 철저한 실행이 필요하다. 특히 배드뱅크라는 금융 구조조정 수단을 통한 채무 해결은 해외에서도 금융위기 시 활용된 바 있지만, 개인 채무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적용은 전례가 드문 실험이다.
정부는 재정 4000억 원을 투입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채무조정기구(배드뱅크)를 설치하고,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의 개인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그동안 개별 금융기관이 각자 관리하던 연체 채권을 정부 기관이 통합 관리하겠다는 의미로, 채무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절차 없이 일괄적인 구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 특히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문제와 사회적 형평성 논란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더욱이 이 정책은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철학인 '상생경제'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대기업과 고소득층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소상공인과 서민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결국 실행 과정에서의 디테일과 부작용 관리에 달려 있다.
배드뱅크 정책의 구조적 분석과 실행 가능성 진단
이재명 정부의 특별 채무조정 패키지는 총 1조 5천억 원의 재정을 투입해 143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채무 구제 정책이다. 핵심은 7년 이상 연체된 개인 채무자들의 5천만 원 이하 빚을 전액 탕감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채무 조정 정책과 차별화되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기존 새 출발기금이 채무 감면과 분할 상환을 병행했다면, 이번에는 아예 빚 자체를 없애버리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정책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배드뱅크 방식을 통한 장기 연체 채권 처리가 있다. 정부는 대출 원가의 약 3% 수준에 채권을 매입하고 추후 이익이 나면 금융회사에 이익금을 분배하는 '사후정산' 방식을 택했다. 초기 채권 매입을 위해 목돈이 필요하지만 매입 가격이 낮기 때문에 비용효율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이는 정부가 부실 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채무자에게는 탕감 혜택을, 금융기관에게는 손실 최소화 효과를 제공하는 윈-윈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두 번째로는 새 출발기금의 대폭 확대다. 총 채무 1억 원 이하, 중위소득 60% 이하 저소득 소상공인의 빚을 90%까지 감면해 주고,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도 최대 20년간 분할 상환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6조 2천억 원의 채무를 진 10만 1천 명이 수혜를 받을 예정이다. 기존 최대 80%였던 원금 감면율을 90%까지 상향한 것은 코로나19 피해의 특수성을 인정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의 실행 가능성에는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재정 건전성 문제다. 당장 1조 5천억 원이 소요되고, 향후 추가 지원까지 고려하면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둘째, 금융 시스템에 미칠 파급효과다. 대규모 채무 탕감이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 기준을 완화시키거나, 향후 대출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사회적 형평성 문제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성실히 빚 갚는 이들만 바보로 만드는 정책"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책 실행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대상자 선정과 심사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연체 기간과 금액만으로 판단하기에는 개별 채무자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 진짜 어려운 사람과 의도적으로 상환을 회피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캠코의 운영 역량도 중요한 변수다. 기존에 주로 부동산 부실 채권을 다뤘던 캠코가 개인 채무자 143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채무 조정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상공인 경제 회복의 마중물인가, 포퓰리즘의 함정인가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 정책은 총 지원 규모 약 16조 원, 대상 인원 113만 명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채무 조정 정책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한국 사회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빚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는 집단적 구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먼저 살펴보면, 소상공인들의 경제 활동 재개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다. 빚 부담에서 벗어난 소상공인들이 다시 사업에 집중할 수 있고, 이는 고용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연체 채권으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담도 줄어들어 전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하지만 부작용과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빚 안 갚는 '무책임'에 왜 퍼주나"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성실하게 대출을 상환해 온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향후 대출자들이 '어차피 정부가 탕감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면서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위험도 있다.
은행권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상생금융' 기조가 은행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대규모 채무 탕감은 금융기관의 손실로 직결되고, 이는 결국 예금자와 주주들이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엄격한 심사 기준과 투명한 운영이다.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선별하고, 부정 수급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둘째, 단순한 빚 탕감을 넘어 소상공인들의 경영 역량 강화와 시장 환경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빚을 없애주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 셋째, 사회적 합의 형성이다. 정책의 필요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결국 이 정책은 한국 사회가 '개인 책임'과 '사회적 연대'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의 문제다. 코로나19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재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적 구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정성과 효율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 정책이 성공하려면, 단순한 '퍼주기'가 아니라 '똑똑한 지원'이 돼야 한다. 소상공인들의 재기를 돕되, 도덕적 해이는 방지하고, 사회적 형평성은 유지하는 섬세한 정책 운영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