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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찾은 김 모 씨의 이야기다. 체질량지수가 36을 넘는 고도비만이었던 그는 매달 40만 원 가까운 비용으로 위고비를 처방받았지만, 석 달 만에 치료를 중단해야 했다. "약값이 월급의 4분의 1이에요. 아무리 건강이 중요해도 생활비를 포기할 순 없잖아요." 그의 말처럼, 비만 치료제의 높은 비용은 치료가 절실한 환자들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적 장벽이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황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위고비와 같은 비만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검토 결과를 내놓으면서,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던 비만 치료제 급여화 논의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비만 치료제, 건강 보험 적용 가능해지나?

비만 치료의 경제적 벽 앞에 선 환자들
1. 월 40만 원의 무게,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
병원 진료실에서 마주한 비만 환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의외로 단순했다. "약이 효과가 있나요?"가 아니라 "이 비용을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요?"였다.
위고비는 2024년 10월 국내 출시 이후 빠르게 확산되어 8개월 만에 약 40만 건의 처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현실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한 달 30만 원에서 4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은 실제로 체중 감량이 절실한 고도비만 환자들에게 높은 장벽이 되고 있었다.
특히 젊은 직장인이나 저소득층 환자들은 치료 시작조차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고, 시작했다 하더라도 몇 개월 만에 중단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2. 국회입법조사처의 급여화 가능 판단이 던진 파장
이런 상황에서 2025년 10월 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의원이 공개한 국회입법조사처의 답변서는 의료계와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조사처는 "국내 법령상 건강보험법 및 관련 고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 기준을 통해 GLP-1 계열 약물의 치료 목적 사용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단순한 가능성 제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법적 근거까지 제시한 실현 가능한 방안이었다. 국회 공식 연구기관이 비만 치료제 급여화의 법적 근거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조사처는 초고도비만 및 합병증 위험 환자에 한정한 단계적 급여화 방안을 제시하면서, 건강보험 재정 부담과 환자의 치료 접근성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했다.
3. GLP-1 계열 약물, 단순한 다이어트 약이 아니다
비만 치료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양면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미용이나 다이어트 목적의 선택적 약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GLP-1 계열 약물은 심각한 대사질환 치료제다. 이 약물들은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호르몬의 작용을 모방해 포만감을 증가시키고 식욕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체질량지수 35 이상의 고도비만 환자나 체질량지수 30 이상이면서 당뇨병, 고혈압 등 2개 이상의 동반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이 약물은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을 예방하는 필수적 치료 수단이 된다.
실제로 이러한 환자들은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는 충분한 체중 감량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약물 치료 없이는 당뇨병성 합병증, 심혈관 질환, 뇌졸중 등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급여화 가능성과 현실적 쟁점들
1. 국회입법조사처가 제시한 구체적 급여화 방안
국회입법조사처의 검토 결과는 단순히 가능하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지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조사처는 초고도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급여화를 제안하면서, 체질량지수 35 이상 또는 체질량지수 30 이상이면서 2개 이상의 동반 질환을 가진 환자를 고위험군으로 정의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유럽의 주요 의학 학회들이 제시하는 기준과 유사한 수준이다. 또한 복지부 고시와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사 기준에 비만 치료 목적의 GLP-1 계열 신약에 대한 급여 가능 근거를 신설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단계적이고 조건부 급여화를 통해 정책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모니터링과 사후관리 체계를 강화해 오남용을 방지하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2. 의료계가 바라보는 급여화의 필요성과 현실
의료 현장에서 비만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다. 대한비만학회 정책이사인 박정환 한양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전면 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고도비만 환자나 그중에서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급여화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일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운동과 영양 상담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 고위험 환자에 한해 선별적으로 비만 치료제를 급여화하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는 더 구체적인 사회적 형평성 문제를 지적한다. "비만 치료제가 비급여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치료를 받고, 진짜 치료가 필요한 비만 환자들은 맞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장애인이나 청소년 등 비만으로 인해 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취약 계층에게는 체질량지수 30 수준만 되어도 보험을 적용해 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3. 오남용 방지와 제도적 안전장치의 중요성
비만 치료제 급여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오남용 방지다. 현재 비급여 상태에서도 미용 목적이나 단기 체중 감량을 원하는 사람들이 의학적 필요성 없이 약물을 처방받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만약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이러한 오남용 사례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의료법과 약사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해 처방 시 진료지침 준수를 의무화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사후관리 및 모니터링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또한 비급여 처방에 대해서도 보고와 모니터링을 의무화해 제도권 밖에서의 무분별한 처방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박정환 교수는 "급여화하면 제도권 안에서 모니터링이 가능해져, 현재 문제 되는 오남용 사례도 제한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며, 오히려 급여화가 오남용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 측면을 지적했다.
비만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전환점
1. 44% 치료 중단율이 말해주는 현실
2025년 기준 비만 치료제 처방 중단율은 44%에 달한다. 이는 2022년의 34%에서 10% 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의사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은 바로 비용 부담이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경제적 이유로 건강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앞서 언급했던 체질량지수 36의 환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도비만 환자들이 매달 월급의 상당 부분을 약값으로 지출하다가 결국 중단을 선택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치료 중단 후 다시 체중이 증가하고,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의 합병증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경험한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2.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의료계의 향후 과제
보건복지부는 학계보다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초고도비만을 대상으로 잡는다면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을 가진 이들을 우선순위로 놓고 접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현실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미화 의원이 지적했듯이, "비만은 단순히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문제가 아닌 각종 만성질환의 원인"이며, "당뇨, 암, 심장질환 등 중증 질환에 대한 예방적 치료의 일환"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는 1975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 비만 인구가 3배 증가했으며, 현재 19억 명의 과체중 인구 중 6억 5천만 명이 비만이라고 추산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2013년 30.6%였던 성인 비만 유병률이 2022년에는 38.4%로 급증했고, 특히 성인 남성의 경우 2명 중 1명이 비만인 상황이다.
3. 비만 치료제, 건강 보험 적용 가능해 지나에 대한 답
국회입법조사처의 검토 결과는 비만 치료제 급여화가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합의다. 비만을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정하고,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환자들이 없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전면적인 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고도비만 환자와 저소득층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 엄격한 처방 기준과 모니터링 체계를 통한 오남용 방지,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 등 합병증 예방으로 인한 의료비 절감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정책이다.
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그 환자가 다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건강을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비만 환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비만 치료제, 건강 보험 적용 가능해지는지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