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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업이 처음 직면한 배출권거래제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도입한 이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에게 탄소배출권을 할당하고, 부족분은 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제3차 계획기간(2021-2025) 동안 유상할당 비중이 10%로 상향되었고, 향후 30-50%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환경규제를 넘어 기업의 재무구조와 경영전략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정책이 되었다. 특히 기후에너지부 신설 논의와 함께 환경부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배출권거래제가 뭐길래 점점 사업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배출권거래제의 실체 - 규제인가 기회인가
2015년 국내에 본격 도입된 배출권거래제를 처음 접한 건 기업들이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2만 5천 톤을 넘어서면서였다. 당시만 해도 '환경 관련 서류 작업 정도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얼마나 순진한 발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배출권거래제는 단순히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경제적 메커니즘이었다.
1. 제도의 핵심 구조와 현실적 영향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게 일정량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할당량을 초과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하거나 다른 기업으로부터 여분의 배출권을 사야 하는 제도다. 현재 69개 업종 중 41개 업종에 대해 90%는 무상으로 할당하고, 나머지 10%는 경매를 통해 유상으로 할당하고 있다. 문제는 이 10%라는 비율이 향후 대폭 확대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2. 실무진의 고민과 현장 대응
한 회사의 경우 월별 에너지 사용량 모니터링부터 시작해서 연간 배출량 산정, 할당량 대비 부족분 계산까지 전담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배출권 부족분이 발생했을 때의 구매 비용은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배출권 가격이 톤당 8천 원에서 1만 5천 원까지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연간 수천 톤의 부족분을 커버해야 하는 기업들의 재무적 부담은 실로 막대하다.
3.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
더 큰 문제는 정책의 불확실성이다. 이재명 정부가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추진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과 환경부의 기후 부문을 통합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조직개편을 넘어 기업들이 대응해야 할 정책의 방향과 강도가 크게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배출권거래제의 현실
실제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해 보면 가장 큰 충격은 이것이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구조를 직접 좌우하는 경제 정책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제조업체들의 경우 생산량 증가와 배출권 확보 사이의 딜레마에 지속적으로 직면하게 된다.
1. 유상할당 확대의 파급효과
현재 평균 10%인 유상할당 비중이 향후 30-50%까지 확대될 계획이라는 소식은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중소기업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 배출권 구매 비용이다. 연간 매출의 1-2%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출권 구매에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비율이 3-5배로 늘어난다면 기업의 투자 여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2. 중소기업의 대응 역량 한계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배출권 관리를 위한 전문 인력이나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어떤 기업은 배출권 관리 업무를 외부 컨설팅 회사에 위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추가 비용만 연간 수천만 원에 이른다. 정부가 의도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효율적 감축'이 실제로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운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3. 환경부 권한 강화의 우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환경부로의 에너지 정책 이관이다. 현재 기후에너지부 조직개편 방안은 크게 3가지로 제시되고 있으나, 어떤 방안이든 환경부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산업 진흥과 환경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정책 방향이 규제 중심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획기적인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속가능한 사업 운영을 위한 현실적 대안
결론은, 이 제도가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에는 아직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급격한 정책 변화보다는 기업들이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하다.
1. 단계적 유상할당 확대의 필요성
현재 10%인 유상할당을 단번에 30-50%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기업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독일의 경우도 지난 5월 연방경제기후보호부에서 기후 업무를 환경부로 이관한 후 다시 '연방경제에너지부'로 개편한 사례가 있다. 이는 환경 규제와 경제 정책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급진적 변화보다는 기업들의 적응 능력을 고려한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2. 중소기업 지원 체계 강화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된 현재의 배출권거래제를 중소기업도 감당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2025년 환경부는 중소기업 녹색 금융 지원을 1.5조 원에서 3.5조 원으로 확대하고 강소 기후기술 기업을 집중 육성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이 되어야 한다. 배출권 관리 시스템 구축 비용 지원, 전문 인력 교육 프로그램, 배출권 구매자금 융자 등 구체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3. 정책 일관성과 예측가능성 확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다. 기업들이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고 친환경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하려면,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틀과 방향이 정치적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기업들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정부는 배출권거래제로 점점 사업하기 힘들어지는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환경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