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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포고문으로 한국을 포함한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가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되었다. 이는 국내 철강산업에 직격탄이 되고 있으며, 대미 수출 비중이 13%에 달하는 우리 철강업계는 그야말로 존립의 위기에 직면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저가 덤핑 공세와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까지 겹치면서 삼중고에 빠진 상황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여야 의원 106명이 공동 발의한 'K-스틸법'이 과연 철강산업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특별위원회 설치, 녹색철강기술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 녹색특구 조성 등이 핵심 내용이지만, 업계에서는 당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산업용 전기료 인하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막는 데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철강산업 위기를 K-스틸법으로 돌파할 수 있을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미국 관세 폭탄과 철강산업의 현주소
한국 철강산업이 직면한 현재의 위기는 단순한 일회성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들이 동시에 폭발한 결과다. 미국의 관세 인상이 방아쇠 역할을 했지만, 그 배경에는 글로벌 철강시장의 근본적 변화와 국내 산업구조의 한계가 깔려 있다.
1. 50% 관세 충격의 실제 파급효과
트럼프 대통령이 6월 4일 서명한 포고문에 따라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25%에서 50%로 인상된 직후, 국내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은 급격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2025년 상반기 철강제품 대미 수출은 이미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한 156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50% 관세가 본격 적용되면서 7월부터는 월간 수출액이 3억 달러선마저 무너졌다. 이는 2022년 이후 처음 있는 일로, 관세 인상의 충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2. 중국 저가 덤핑의 이중 타격
미국 관세 문제만큼 심각한 것이 중국발 저가 철강재의 우회 덤핑이다. 중국 내수 부진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저가 철강재는 국내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 철강업체들이 동남아시아 등 제3국을 경유하는 우회 수출 방식을 활용하면서 원산지 추적이 어려워 대응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국내 철강업체들은 대외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다.
3. 국내 수요 산업의 동반 침체
국내 건설업과 조선업 등 주요 수요 산업의 부진도 철강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건설 수요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조선업도 글로벌 경기 둔화로 신규 수주가 부족한 상황이다.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막힌 상황에서 철강업체들은 설비 가동률을 크게 낮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철강사들의 가동률은 70%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K-스틸법의 내용과 한계 분석
여야 의원 106명이 공동 발의한 K-스틸법은 대통령이 위원장인 특별위원회 설치를 핵심으로 하여 철강산업의 중장기 발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업계가 직면한 급박한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시급성과 실효성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
1. 녹색철강 기술 중심의 장기 전략
K-스틸법은 저탄소 철강 기술 개발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장기 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소 환원 제철, 무탄소 전력 등 녹색철강 기술에 대한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 그리고 녹색특구 조성 등은 분명 미래 지향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최소 5~1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의 생존 위기에 직면한 업계에는 원거리 해법일 뿐이다.
2. 산업용 전기료 인하 제외의 아쉬움
철강업계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산업용 전기료 인하 내용이 K-스틸법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2020년 1㎾h당 94원이었던 산업용 전기요금이 2024년 12월 190.4원까지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철강업체들의 생산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다. 전력비가 생산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20%에 달하는 철강산업에서 전기료 인하는 즉각적인 경쟁력 회복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미국이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을 정부 보조금으로 간주해 관세를 부과한 상황에서 전기료를 다시 내려주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3. 중국산 덤핑 대응책의 실효성 의문
K-스틸법에는 원산지 규정 강화, 부적합 철강재 수입 및 유통 억제, 불공정 무역행위 대응 등 중국산 철강재 덤핑 대응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미 정부가 지난 3월 관세대응 바우처 신설 및 우회덤핑 행위 방지 방안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은 계속되고 있다.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집행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철강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종합 전략
K-스틸법만으로는 현재의 철강산업 위기를 완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법안이 제시하는 중장기 전략과 함께 단기적 생존 대책, 그리고 산업구조 개편을 통한 근본적 경쟁력 강화가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1. 단기 생존 전략의 필요성
업계는 속도감 있는 K-스틸법 추진으로 철강산업의 골든타임을 지키고, 그 외 현실적인 구조개편안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정부는 철강업체들의 당장의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정책자금 확대, 보증 지원 강화 등의 금융 지원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설비 가동률 하락으로 고정비 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세제 지원이나 사회보험료 경감 등의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수출 다변화와 고부가가치화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수출 다변화 전략도 중요하다. 아세안 지역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중동의 인프라 개발, 인도의 산업화 등 새로운 수출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 동시에 단순 철강재 수출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특수강, 철강 부품 등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함께 해외 현지 생산 기지 구축도 고려해야 한다.
3. 녹색 전환을 통한 차별화 전략
장기적으로는 K-스틸법이 제시하는 녹색철강 기술 개발이 핵심 해법이 될 것이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탄소 배출이 많은 기존 철강재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수소 환원 제철, 전기로 기반 친환경 제철 등 저탄소 생산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기술 개발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결국 철강 관세 50%라는 전례 없는 충격 속에서 K-스틸법이 제시하는 중장기 비전과 함께 즉각적인 생존 대책이 병행되어야 철강산업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법안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정부와 업계가 합심하여 단계별 종합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