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건설 현장의 침묵, 그 뒤에 숨겨진 진실
1. 멈춰버린 타워크레인과 텅 빈 현장 사무실
지난 3월 말, 경기도 화성의 한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의 일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수백 명의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타워크레인이 쉴 새 없이 자재를 나르며, 용접 불꽃이 사방에서 튀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고요했습니다. 타워크레인은 멈춰 있었고, 현장 사무실에는 안전관리자 몇 명만이 서류 더미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소장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공사를 진행하면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봐 두렵습니다. 한 번의 사고로 회사가 공공사업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차라리 공사를 멈추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2025년 대한민국 건설업계의 현실입니다.
2. 숫자로 본 건설업계의 급격한 추락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기성은 전년 대비 무려 18.6퍼센트나 급감했습니다. 이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최대 감소폭입니다. 건축허가면적은 2023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며 2025년 7월까지 16.5퍼센트 감소했고, 건축착공면적 역시 12.8퍼센트 줄어들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대형 건설사의 고용 인원이 1년 사이에 2,835명이나 감소했다는 점입니다. DL이앤씨에서만 607명, 대우건설에서는 519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러한 수치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수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3. 규제와 경기침체, 이중고에 갇힌 건설업
건설업계가 현재 직면한 위기는 두 가지 강력한 힘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입니다.
첫째는 전방위적으로 강화된 안전 규제입니다. 조달청은 지난 2025년 2월 중대재해 발생 업체의 조달사업 참여를 엄격히 제한하는 대책을 발표했고, LH는 민간참여사업 평가에서 안전 항목 비중을 대폭 높였습니다. 정부는 중대재해를 반복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퍼센트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3년간 두 차례 영업정지를 받은 기업이 또다시 사고를 내면 건설업 등록을 말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둘째는 계속되는 경기 침체입니다. 부동산 시장 둔화, 금리 상승, 자재비 급등이 겹치면서 신규 프로젝트는 줄어들고 기존 공사마저 중단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되면서 건설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규제 강화가 불러온 건설 현장의 변화
1. 조달청과 LH의 안전 관리 강화 정책
2025년 2월 18일, 조달청은 중대재해 발생 업체에 대한 조달사업 참여 제한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기존의 가점제를 배점제로 전환하고, 중대재해에 대한 감점을 신설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50억 원 이상 공사에만 적용되던 사고사망 만인율 감점을 50억 원 미만의 중소 규모 공사로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또한 민간참여사업 평가항목에서 안전과 품질 관리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한 중견 건설사 현장 소장은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과거에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벌금을 내거나 일시적인 영업정지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 번의 중대재해로 수백억, 수천억 원 규모의 공공사업 입찰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2.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 미친 영향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중대재해를 반복한 기업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퍼센트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더 나아가 3년간 두 차례 영업정지를 받은 기업이 또다시 중대 사망사고를 발생시키면 건설업 등록이 말소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회사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한 대형 건설사의 안전담당 임원은 비공개를 전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방지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안전교육, 안전점검, 안전회의로 하루가 다 갑니다. 현장 근로자들은 실제 작업 시간이 줄어들어 수입이 감소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회사는 공사 기간이 늘어나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정작 발주처에서는 공사비를 올려주지 않습니다."
3. 대형 건설사들의 대규모 구조조정 실태
2025년 상반기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의 총 고용 인원은 5만 368명으로 1년 전인 5만 3,221명보다 2,835명이 감소했습니다. 감소율은 5.3퍼센트에 달합니다. 특히 고용 유연성이 높은 기간제 근로자가 전체 감원 인력의 82.4퍼센트인 2,354명이나 줄어들었습니다. DL이앤씨에서는 1년 새 607명이, 대우건설에서는 519명이, GS건설에서는 156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인력 감축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규모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프로그램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계약 만료, 권고사직, 자연 퇴사 등의 형태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중견 건설사에 근무하는 20년 차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공식적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서가 통폐합되고,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4. 안전 조직 강화와 비용 증가의 딜레마
역설적이게도 인력을 감축하는 와중에도 건설사들은 안전 관련 조직은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우건설은 최고안전책임자 산하에 본사와 현장을 총괄하는 담당 임원 두 명을 추가로 선임했습니다.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포스코이앤씨는 최고안전책임자를 사내이사로 임명했고, 삼성물산과 GS건설은 최고안전책임자를 부사장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한 건설사 인사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장 인력은 줄이지만 안전 인력은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 안전 인력은 직접적인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결국 회사의 비용 부담만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비용 증가가 공사비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발주처는 예산이 정해져 있다며, 안전 비용을 추가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5. 건설기성 급락과 현장의 위축
건설기성은 실제로 완료된 공사의 금액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18.6퍼센트나 급감했다는 것은 현장에서 공사가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지방의 중소 건설사 대표는 절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는 5개의 현장을 동시에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개만 남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재를 주문하면 가격이 올라 있고, 근로자를 구하려 해도 임금이 계속 오릅니다. 반면 우리가 받는 공사비는 2년 전 수준 그대로입니다.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입니다. 그래서 아예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을 최소 인원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장 중단 사례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것이 건설기성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건설업계의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
1. 공사비 현실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건설업계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사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안전 관리 비용, 인건비, 자재비는 계속 상승하는데 공사비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건설경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은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예산 절감을 이유로 공사비를 낮게 책정하면, 결국 그 부담은 건설사와 하도급업체, 그리고 현장 근로자에게 전가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실효성이 없습니다.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각종 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공사비 현실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안전 관리 비용, 적정 임금, 품질 관리 비용을 공사비에 명확히 반영하는 적산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2. 규제와 지원의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안전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규제만으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현재와 같이 과도한 처벌 위주의 규제는 오히려 건설사들이 위험한 공사를 회피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건설경기 전체를 얼어붙게 만듭니다.
한 건설안전 전문가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정부는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기업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에 투자하고 사고 예방에 성공한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정 기간 무사고를 달성한 기업에는 입찰 시 가점을 주거나, 안전 투자 비용의 일부를 세액 공제해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소 건설사의 경우 안전 관리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므로, 정부가 안전 교육, 안전 컨설팅, 안전 장비 구입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합니다.
3. 장기적 관점에서의 건설산업 정책 재정립
건설산업은 단순히 건물과 도로를 만드는 산업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이며, 수백만 명의 일자리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최신 전망에 따르면,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6년까지 건설경기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건설산업 진흥 대책이 필요합니다.
첫째, 공공사업 물량을 확대하되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야 합니다. 둘째, 민간 건설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셋째, 스마트 건설, 친환경 건설 등 미래 건설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넷째, 건설 근로자의 처우 개선과 청년 인력 유입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4.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어야
정책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효과는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건설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한 현장 안전관리자는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완벽한 안전 관리 계획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하고, 시간이 촉박하고, 예산이 모자랍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직접 현장에 와서 며칠만 일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할 때 현장 실무자, 건설사, 근로자,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합니다. 또한 시범사업을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 후 전면 시행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5. 마지막으로, 희망의 불씨를 지켜내야
한 60대 철근공 박 씨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나는 40년 넘게 건설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이 나라의 아파트, 빌딩, 다리, 도로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젊은 사람들은 건설업을 기피합니다. 이대로 가면 이 나라의 건설업은 무너집니다." 건설업의 위기는 단순히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정부, 기업, 근로자,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건설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안전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건설산업,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건설산업, 젊은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건설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변화의 시작점입니다. 건설경기가 살아야 하는데 공사 중단 속출,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의지와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